Bio Cluster ①
모임, 또는 무리라는 사전적 의미를 담고 있는 클러스터(cluster)는 특정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 전략상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전략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는 산업 클러스터의 개념을 제안하면서 그 정의를 ‘유사성(commonalities)과 보완성(complementarities)에 의해 결합해 특정 영역에 상호 연결된 기업과 연관된 기관들이 지리적으로 근접한 그룹’ 으로 설정했다. 상호 네트워킹과 공동 연구가 필수인 지식융합형 신산업 분야에 있어 산업 클러스터의 중요성은 크게 강조돼 왔다.
바이오산업은 생명공학, 의공학, 의·약학 지식에 기초해 인체에 사용되는 제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으로 의약품, 의료 기기 등 제조업과 의료·건강관리 서비스업을 포함한다. 바이오산업은 타 산업에 비해 임상시험 비용 등 거대한 연구개발(R&D) 투자 비용이 소요되지만, 신제품의 상용화 성공 가능성이 작으며 규제에 따른 시장 진입 시간도 오래 소요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요인으로 기술 개발 및 시장 진출을 산·학·연·병이 개별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워 상호 간 협력과 연계가 필수적이고, 따라서 클러스터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다.
때마침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주요 업무 계획 중 하나로 바이오 첨단 전략산업 특화 단지를 상반기중 지정해 전략 거점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4월 미국 국빈 방문 때 보스턴을 찾아 현지 전문가들과 클러스터 혁신 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그해 6월 서울 마곡 바이오 클러스터 서울창업허브M+에서 제5차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하며 한국판 보스턴 클러스터 조성에 힘을 실은 정부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낡은 도시 보스턴을 바이오 성지로 바꾼 클러스터
세계 각국은 바이오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바이오 클러스터를 구축·운영하고 있다. 바이오 클러스터는 생명공학이 발전하면서 생겨났다. 1953년 DNA 구조 발견 이후 1970년대부터 생명공학 연구가 급격히 발전하고 자본 접근성, 연구의 전문성, 지원 인프라 환경 등이 강조됨에 따라 바이오 클러스터들이 형성된 것이다. 미국은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등 17개 지역에 바이오 클러스터가 있다.
대표적으로 1980년대 하버드대·매사추세츠공대(MIT) 등 명문 대학과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연구인프라를 중심으로 바이오 기업들이 자생적으로 모여 만들어진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를 들 수 있다.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는 가장 낡은 도시였던 보스턴이 첨단 바이오 산업 단지로 변화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바 있다. 2021년 기준 미국 국립보건원(NIH) R&D 지원금은 총 37억 1100만달러(약 5조원), 벤처캐피털(VC) 투자는 101억1300만달러(약 13조4564억원)에 달했다. 영국, 스웨덴,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을 위시하여 중국, 싱가포르, 호주 등 바이오헬스 산업을 중시하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바이오 클러스터는 조직적으로 구축돼 있다.
공정 보상과 정부 선도 전략 기반 한국형 바이오 클러스터
국내 바이오 클러스터도 생명공학 관련 정부 정책에 따라 추진되기 시작했다. 1990년도 생명공학 육성 계획을 시작으로 1997년 민간과 지자체 중심으로 조성됐다. 2009년부터는 정부 주도의 클러스터를 지역별로 육성하고 있는데, 정부는 바이오 클러스터를 정부 주도형·지자체형·자생형으로 구분해 지원한다. 정부 주도형으로는 ‘첨단의료복합단지법’ 제정을 통해 경북 대구와 충북 오송에 각각 설립된 첨단의료복합단지 두 곳을 들 수 있다. 지자체형으로는 서울 홍릉의 바이오 허브가 대표적이다. 자생형은 연구자 주도형, 민간 기업 주도형 또는 지역의 특수성이 반영된 형태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된다. 강원도 원주에는 대학연구자 중심으로 시작한 산업 단지인 의료기기테크노밸리가 형성됐으며, 대전에서도 대덕 연구개발특구의 R&D 기능과 연계한 바이오 허브가 조성됐다. 인천 송도의 클러스터는 경제자유특구라는 특수성을 활용해 대형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으며. 판교·광교에서도 기존의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 인프라를 기반으로 생명공학 융합 중심의 클러스터를 육성해 나아가고 있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거치며 더 크게 주목 받고 있는 바이오산업은 혁신 성장을 주도하는 주요 산업이다. 바이오 클러스터 육성은 이를 위한 필수적인 전략으로 꼽힌다. 현 정부는 2023년 6월 ‘첨단산업 글로벌 클러스터 육성 방안’을 수립한 후 한국판 ‘보스턴 클러스터’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윤 대통령은 당시 “보스턴 클러스터는 MIT라는 공학 기반만으로 된 것이 아니고, 공정한 시장 질서와 보상 체계가 자리를 잡으면서 공학·의학·법률·금융 분야 최고 인재들이 모이도록 만든 것”이라며 보스턴 클러스터의 성공 전략을 소개했다. 미국이 세계적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던 배경에 정부의 적극적인 초기 투자, 국제기관과 연계가 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서울대학교 병원-MIT 디지털 바이오 연구 협력 등 한국과 보스턴 간의 ‘바이오 동맹’ 추진도 같은 맥락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1월 말 ‘2024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서 “민관 투자 활성화를 통해 바이오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화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올해 상반기 바이오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지정을 통한 전략 거점 육성 △첨단바이오의약품 제조 공정 고도화 지원 확대 및 바이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업화 지원 등을 추진한다.국내 바이오헬스 산업의 성장 단계와 기술 개발 추이를 고려할 때 매우 시의적절한 시도다. 기업과 연구자를 모으는데 집중하기보다는 기업과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큰 틀에서 고민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