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조명

끝나지 않는 왕좌의 게임, 그 핵심은 신산업에 있다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ICT통계정보연구실장

끝이 보이지 않는 미·중 통상 분쟁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복잡해 보이는 G2 전쟁의 핵심 쟁점은 신산업에 있다.
4차 산업혁명과 5G 시대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두 강국의 기술 패권 전쟁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지난 2019년 10월 미·중 무역협상에서 만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회의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사진 한경DB

정치·경제·군사적 영향력에서 미국과 중국은 이미 G2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21세기 초반의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벌어지고 있는 양국 간의 통상 분쟁이나 화웨이에 대한 미국 기업의 거래 금지는 글로벌화 시대에 그 전례를 찾기 힘든 조치가 아닐 수 없다. 글로벌가치사슬(GVC)에 충격을 가하는 이러한 조치는 양국 기업 모두에게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경제적 합리성을 통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미·중 통상 분쟁이나 화웨이에 대한 조치는 장기적인 지정학적 우위, 구체적으로는 기술 패권을 통해 정치·경제·군사상의 우위를 유지하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즉 미·중 갈등은 경제적 갈등을 넘어서는 지정학적 경쟁이고, 한쪽의 이익이 다른 쪽의 손해를 의미하는 제로섬게임인 것이다.

지정학적 경쟁우위를 위한 미국, 중국 전략의 핵심 요소, 기술 패권

국제 무대에서 정치·경제·군사상의 우위, 즉 지정학적 우위를 유지하는 핵심 수단이 기술 패권이다. 첨단기술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경제성장은 물론, 군사·안보상의 위상 증대로 연결된다. 특히 농업 같은 전통적 산업은 물론, 자동차·조선 등의 제조업, 금융 등의 서비스산업을 모두 망라하는 첨단기술에서의 우위는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나 기업경쟁력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컴퓨팅을 중심으로 하는 정보통신기술(ICT)이 바로 그러한 기술이며, 군사·안보상으로도 중요하기 때문에 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이 된다.
중국 정부가 제조업 고도화를 목표로 ICT를 주요 육성 분야로 지정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이 중국을 지정학적 경쟁의 대상으로 명확히 적시하면서 경제·안보·군사 측면에서 ICT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주목받는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 바이오산업 등은 모두 컴퓨팅 및 이들 간의 네트위킹에 기반을 둔 분야이며, 이들 분야에서의 기술 패권은 경제는 물론 정치·군사·안보상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5G의 선도 기업으로 주목받는 화웨이가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이 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미·중 갈등 국면에서 미디어의 주목을 받은 것은 주로 관세를 둘러싼 마찰이었지만 장기적으로 더욱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미래 산업 지형을 바꿀 가능성이 있는 전략 분야에서의 기술 패권 경쟁인 것이다.

기술 패권과 신산업

지정학적 경쟁에서 전략적 의의가 큰 분야의 기술 패권 경쟁은 아무래도 미래 잠재력이 큰 신성장 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차세대 반도체와 인공지능, 퀀텀 컴퓨팅, 자율주행 자동차 등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분야라고 판단된다. 이들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이자, 미국과 중국이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차세대 반도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반도체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에서 컴퓨팅의 기능은 각 사물과 컴퓨터에 내장되는 반도체를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자동차 등의 발전에 따라 시스템 반도체의 수요가 증대할 전망이다. 또 무어의 법칙이 점차 한계에 봉착하면서, 일반 기능을 수행하는 전통적 CPU의 한계를 뛰어넘는 인공지능 특화 칩이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뒤져 있는 중국이 이 분야에서는 미국을 따라잡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며, 중국 정부 및 화웨이 등 주요 ICT 기업들이 대규모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를 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

인공지능은 빅데이터에 기반해 수많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범용 기술로, 대부분의 산업에서 전통적 산업 지형을 변화시키는 기술이 될 전망이다. 사실 빅데이터, 인공지능, 인터넷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결합되어 진화한다. 데이터는 인터넷 사용 과정에서 축적되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주로 클라우드를 통해 활용될 것이므로 인터넷 자체가 보다 지능화되고 수많은 비즈니스의 도구로 변화하게 된다. 앞의 도표 인공지능 전문가 국가별 분포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변화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 거대 플랫폼 기업과 알리바바, 텐센츠, 바이두 등 중국 플랫폼 기업 간의 글로벌 경쟁을 통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 전문가 국가별 분포(2018년)
미국 23,378 5,158
중국 17,255 977
인도 16,967 417
독일 8,322 1,119
영국 6,821 1,117
프랑스 5,339 1,056
이란 6,219 0
브라질 5,593 389
스페인 4,170 772
이탈리아 3,753 987
캐나다 3,622 606
터키 3,385 0
호주 2,671 515
일본 2,466 651
한국 2,664 0
인공지능 전문가 인공지능 최고 전문가
자료: 스타티스타(www.statista.com/)
양자 프로세스 디지털 사이버 공간 3차원을 표현한 그림
퀀텀 컴퓨팅

퀀텀 컴퓨팅은 일반 컴퓨터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최적 경로 탐색 기반 최적화, 대량 데이터 탐색 등 복잡하고 빠른 계산이 필요한 산업 분야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유망 분야이다. 특히 퀀텀 컴퓨팅이 현존하는 암호 시스템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미·중 기술 패권 경쟁에서 중요한 분야로 인식된다. 미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선두 주자로 자리 잡았고, 중국도 2013년부터 특허출원 수에서 일본을 추월해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13차 5개년 국가과학기술혁신계획(2016~2020)에 퀀텀 컴퓨팅을 포함시켜 정부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

자율주행 자동차는 교통과 주행을 전면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혁신으로, 인공지능과 5G의 융합체로서 첨단기술 발전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것은 미국의 구글이지만, 중국은 ‘중국제조 2025’에서 자율주행 자동차의 선도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으며, 바이두를 비롯한 많은 기업이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중국은 방대한 데이터, 자율주행차 친화적인 도로 환경 구축이나 법 제도 개선 등으로 기술에서의 열세를 극복하고자 하며, 향후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 테스트 중인 차량들
미·중 갈등 전방위적으로 확대 가능

4차 산업혁명이 전망되는 시점에서 지정학적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신산업 분야에서 기술 패권을 차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중 통상 분쟁은 전통적인 관세 부과를 넘어서, 상대방의 혁신 역량을 약화시키는 제반 수단을 총동원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안보 이슈를 제기하며 화웨이에 대해 제재 정책을 취한 조치는 그 시작에 불과할 수 있으며, 양국 간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통상 분쟁이 전통적인 교역을 넘어서 투자, 인력 교류 제한 등 전방위적으로 확대될 수도 있는 것이다. 투자 및 인력 교류의 제한은 상대국의 혁신 능력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은 해외투자 다변화 등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미래 투자를 결정해야 할 것이며, 정부는 핵심 전략 분야의 연구개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